자신의 영역과 한계를 끊임없이 정해두는 이들이 있다. “여기까지가 우리의 영역”이라며 정해진 선 밖으로 나가는 걸 두려워 하는 이들이다. 에디터 역시 그런 편이다. 생전 처음 접해보는 일들이 너무도 두렵다. 우선은 전문 분야가 아니기 때문이고 그래서 막연히 어렵다. 실수할까 봐, 또 혹시 네 일이나 잘하라며 쓴소리를 들을까 봐. 누구나 다 일을 잘하고 싶고 그래서 인정받고 싶다. 그러나 이런 한계를 정해두면 어느 순간 성장을 멈춰버리게 되는지도 모른다. 지면 한계상 잡지에는 싣지 못했지만, 지난달 오롤리데이의 ‘롤리’ 박신후 대표가 해피어 마트를 준비하며 느꼈던 것을 얘기한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원래는 구멍가게 사장님 마인드였던 것 같아요. 이 정도면 행복해, 충분해.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 순간 직원들도 성장할 수 없게 되고, 이곳에서 꿈을 꿀 수 없게 되어버린다는 걸 깨달았어요.”

맞다. 한계와 영역을 분명히 한다는 건 전문성을 늘리는 길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그것밖에 할 수 없게 만드는’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더 성장할 수 있다. 더 잘 할 수 있다.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고, 그 새로운 것을 통해 또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가능성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다. 테마 인터뷰를 진행하며 실제로 관심 가는 많은 것들을 배웠다. 여러분들도 새로움을 안고 성장할 수 있다. 오늘 소개할 이들은 건축과 인테리어를 베이스로 두고 있지만 각자의 욕구 안에서 다른 영역에 도전하며 멋진 성장을 일궈낸 이들이다.




뻔하지 않은 충격을 더해주는 SHOWMAKERS

 

쇼메이커스는 최도진 대표가 이끄는 ‘크리에이티브 그룹’이다. 최도진 디렉터는 사진작가로 일하다 젠틀몬스터에 아트디렉터로 입사, 브랜드 디자인을 총괄했다. 2017년 그가 젠틀몬스터에서 독립해 만든 쇼메이커스는 설립 이후 그들의 공간을 처음 방문하는 이들로 하여금 새롭고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며 파란을 일으켰다. 최도진 대표의 시작, 그리고 쇼메이커스가 탄생한 모든 과정 하나하나가 도전이었던 셈이다. 최도진 대표가 그 자신의 사진 스튜디오를 처음 오픈했을 때 역시 새로웠다. 사진 작업이 베이스였지만 전시와 같은 행사도 열 수 있는 갤러리가 되기도 했다. 젠틀몬스터에서 아트디렉터로 일하다 공간 스튜디오를 만들어 독립한 것은, 단지 그가 좋아하는 일만 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가 처음 쇼메이커스를 만들며 함께 했던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도전이라는 단어가 절로 나온다. 비주얼 디렉터, 공간 디자이너, 미디어 디렉터, 키네틱 엔지니어까지. 최도진 디렉터는 공간을 그저 멈춰 있는, 하나의 완성된 무언가로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래픽, 오브제, 영상, 키네틱 아트, 심지어 빛까지 다양한 요소들이 뒤얽히며 공간을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청담동에 위치한 남성수트 매장 528Hz는 컨템포러리 클래식을 테마로, 자연적 소재와 미래적 테크놀로지를 매칭했다. 그레이 스케일이 베이스가 되는 공간이지만 1층 전체를 아우르는 천장 라이팅을 통해 공간 자체에 집중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공간과 공간에 놓인 오브제, 판매되는 제품들이 마치 갤러리에 전시된 작품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가로수길에 위치한 파인드 카푸어 신사점 역시 새로운 요소들로 가득하다. 제품이 단조롭게 배치된 여타 매장과는 달리 ‘빛의 모멘텀’을 콘셉트로 공간을 최대한 단순화하고 조형적인 오브제를 배치, 구성해 브랜드의 특징을 강조했다. 쇼메이커스는 또한 공간 안에 디스플레이 존을 배치했는데, 각각의 디스플레이 존은 제품의 성격과 맞아떨어지는 모던함으로 공간에 신선함을 더했다.




쇼메이커스는 공간에 그치지 않고 다른 시도를 펼치기도 했다. 스튜디오가 론칭한 브랜드 코드먼츠(Codements)는 디자인부터 생산까지 쇼메이커스가 직접 해낸 자체 브랜드로, 과거부터 우리가 사용해왔던 손목시계를 모던하게 재해석하며 독창적인 시그니처 룩을 제안한 것이었다. 스튜디오는 자신들만이 가진 ‘다양함’을 통해 공간을 방문하는 이들, 이들의 상품을 경험하는 이들에게 짜임새 있는 새로움을 선사한다. 많은 이들이 스스로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고 소개하지만 디렉터로서 쇼메이커스 최도진 대표가 보여주는 크리에이티브함은 그야말로 ‘창의적’이라는 단어 이외의 것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서울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쇼메이커스의 공간에서 선사하는 크리에이티브, 도전과 통섭, 그리고 균형을 통해 뻔하지 않은 충격과 대면해보자. 쇼메이커스의 팬이 되는 일은 결코 어렵지 않을 것이다.




디자인선수단, 진짜선수

 

디자인선수단 ‘진짜선수’는 2015년 용산에서 출발한 인테리어 스튜디오로, 이선수 대표가 스튜디오를 이끌고 있다. 대학 시절 절친했던 이들과 함께 스튜디오를 운영하다 이제는 각자의 길을 걷는 중이다. 짐작했겠지만 진짜선수라는 스튜디오명은 이선수 대표의 이름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이들 역시 그럴듯한 영단어를 떠올리려 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몸에 맞지 않는 옷 같았다.

 

이선수 대표와 함께 스튜디오를 준비했던 그의 선배가 물었다. “네 이름이 선수니까 진짜선수 어때?” 이거다 싶었다고 한다. 이들은 ‘진짜는 당신의 삶이고 우리는 디자인을 하는 선수’라고 부연설명을 하곤 하지만 사실 굉장히 단순하고 직관적인 이름인 셈이다. 이들은 게임 하듯 디자인 ‘선수’로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가고 있다. 포트폴리오의 이름은 그래서 게임이고, 이선수 대표는 스스로를 소개할 때 ‘감독’이라는 호칭을 쓴다. 진짜선수가 공간을 만들며 중요시하는 것은 클라이언트를 설득하는 일이다. ‘왜’와 ‘어떻게’. 이선수 대표가 꼭 묻는 질문이다. ‘그냥 이렇게 하자.’ ‘그건 원래 그런 거야’ 같은 말이 싫었던 그다. 디자인을 잘한다 못 한다를 떠나 돈을 받고 일하는 입장이기에 성의 없는 말로 ‘그냥’ 넘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왜 이 공간을 비우는지, 왜 어떤 빛이 여기에 필요한지 스스로를 설득한다. 스스로를 설득할 수 없다면 결국 클라이언트도 설득할 수 없었다.




흥미로운 점은 최근 이들이 공간을 넘어 ‘패션’의 영역에도 도전장을 내밀었다는 점이다. 처음 시작은 팀복이었다. 2, 3장 정도 만들어 입고 다니던 것을 조금 더 만들어 팔아보게 됐고, 마침내 크라우드 펀딩까지 진행하게 됐다. 물론 첫 도전이었던 만큼 순탄하지는 않았지만 호기심만으로 진행해보는 일은 처음이었기에 끝까지 밀어붙일 수 있었다. “가끔은 순간적인 판단이 큰 흐름을 결정할 때가 있는데, 저희가 옷을 만들게 된 시점도 이런 순간 중 하나였어요.” 이선수 대표, 아니 이선수 감독의 말이다.

 

과감한 선택이었다. 쉽지 않은 도전이다. 이들의 도전 밑바탕에는 그들만의 디자인 철학이 있었다. 디자인은 결국 시간과 관련되어 있다. 무언가를 덧붙이려면 그를 위한 시간과 예산이 더해진다. 반면 형태를 만드는 데 들어간 시간만큼 공간을 어떻게 느끼는지에 대한 고민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이들은 형태를 만드는 데 집중하기보다 형태 이전의 것들에 대해 더 고민하고 신경 쓰려 한다. 옷이라는 형태를 넘어 이들의 작업이 더 주목 받을 수 있었던 이유 아닐까.




공간에 콘텐츠를 더하다, URBANPLAY

 

이들에게 도시에도 OS가 필요하다는 말은 콘텐츠를 통한 공간 운영 솔루션을 뜻한다. 공간시장이 입지와 유통, 즉 어느 위치에 있느냐와 어떤 것들을 파느냐에서 경험과 콘텐츠, 즉 무엇을 경험하고 느낄 수 있느냐로 바뀌고 있다. 콘텐츠의 중요성이 부각됨에 따라 각 지역에서 다양한 활동으로 자신만의 창의성을 펼치고 있는 크리에이터가 늘어났다. 어반플레이는 로컬 크레이이터를 발굴, 브랜드화 해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보여주고자 했다. 이들의 첫 시도는 ‘연남방앗간’이었다. 동네 방앗간이라는 공간은 지역 주민들이 모여 고춧가루를 빻고, 떡을 만들고, 참기름을 내리며 대화를 나누는 커뮤니티이자 미디어의 역할을 해왔다. 어반플레이가 주목한 것은 방앗간의 이런 면모였고, 이 문화의 원형을 가져와 기획한 공간이 바로 연남방앗간이었다. 첫 콘텐츠는 방앗간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참기름이었고, 참기름으로 만들 수 있는 메뉴들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참기름은 친숙하지만 그 안에 많은 스토리를 담고 있었고 해답을 찾기 위해 음료 개발 전문가, 참기름 소믈리에 등 다양한 크리에이터와 만나 소통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어반플레이는 공간에 구속되지 않는다. 공간을 넘어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이며 계속해 새로운 방향으로 도전을 펼치고 있다. 이들에게 콘텐츠, 공간, 미디어 사이의 구분은 큰 의미가 없다. 오직 기획하고 제작하는 과정에서 어떤 방식으로 콘텐츠를 경험하게 할 것인가를 고민할 뿐이다. 그것이 공간이 될 수도 있으며, 미디어가 될 수도 있고, 또 ‘아는 동네’ 매거진 등 다른 방식이 될 수도 있을 뿐이다. 핵심은 콘텐츠 경험을 통해 커뮤니티를 구축하고, 새로운 비즈니스 플랫폼을 만드는 데 있다.




이들의 디자인 소스는 콘텐츠다. 콘텐츠는 지역을 기반으로 탄생한다. 지역과 디자인, 둘 중 더 우위에 있는 것은 없다. 도시 유휴공간을 주로 활용하는 어반플레이는 다만 공간이 머금고 있는 시간을 최대한 살리려 할 뿐이다. 이 시간이 그 자체로 콘텐츠가 되고, 내러티브가 되며, 공간의 모티브가 된다. 결과적으로 이들이 집중하는 부분은 공간을 통한 메시지와 경험이다. 이를 끌어내기 위해 크리에이터와 그들이 가진 콘텐츠에 집중하는 것이다.

 

코로나 이후에는 상권이 다른 방향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이전에는 명동, 강남과 같은 대형 상권에 묶여 있었지만 앞으로는 다양한 골목상권이 파편적으로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그렇다면 유·무형의 자원을 가진 동네가 새로운 상권으로서의 잠재성을 가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어반플레이의 생각이다. 자연적 요소를 품고 있는 곳, 지역만의 건축적 특징을 지닌 곳 등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어반플레이와 같이 민간에서 지역 콘텐츠 베이스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공간의 중심에 두고 실험한다면, 보다 더 다양한 지역 생태계가 성장할 밑거름이 피어날 것이다. 그로부터 또 다른 사회적 가치 또한 발견될 수 있으리라. 어반플레이는 앞으로도 더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크리에이터들이 나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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