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z Gégène”, Joinville-le-Pont, France, 1938 © Henri Cartier-Bresson / Magnum Photos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마트폰으로 간편하게 사진을 찍을 때마다 확인하면서 원하는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촬영을 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꼭 스마트폰이 아니더라도 DSLR, 미러리스 등 결과물을 바로바로 확인할 수 있는 장비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렇게 기술이 발전하며 사진을 촬영하는 방법을 변화시키기 전에는 어땠을까? 스마트폰, 디지털카메라와는 다르게 필름 카메라는 촬영의 결과물도 다르지만 촬영 방식의 차이도 크다.

Boston, United-States, 1947 © Henri Cartier-Bresson / Magnum Photos

필름카메라는 셔터를 눌러 피사체를 기록할 때마다 결과물을 확인할 수 없으며, 필름의 사이즈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인 소형 카메라의 필름은 적게는 약 24컷에서 많게는 36컷의 제한된 사진을 얻을 수 있다. 때문에 디지털 카메라에 비해 더욱 신중하게 셔터를 누르게 되며, 원하는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다양하게 찍어내기 어렵다. 그렇다면 뷰 파인더 속 장면이 완벽할 때, ‘결정적 순간’에 셔터를 눌러야 하지 않을까.

사진제공: 앙리 카르티에 프레송 사진전 / ©김시훈
©임정훈

<결정적 순간>의 발행 7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전: 결정적 순간》이 오는 10월 2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개최된다. 이번 전시는 카르티에 브레송 재단이 소장하고 있는 <결정적 순간>에 수록된 오리지널 프린트, 1952년 프랑스어 및 영어 초판본, 출판 당시 편집자 및 예술가들과 카르티에 브레송이 주고받은 서신을 비롯하여 작가의 생전 인터뷰, 소장했던 라이카 카메라를 포함한 컬렉션을 소개한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대표작 <결정적 순간>은 사진작가의 바이블로 여겨진다. 그가 세계 곳곳을 누비며 영국 조지 6세의 대관식, 간디의 장례식, 중국 국민당의 패배와 공산당의 집권 등을 기록한 ‘결정적 순간’을 느껴보도록 하자.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전, 독일 데사우. 1945년 5~6월 / ©임정훈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작은 필름 카메라를 들고 거리에서 찍은 사진을 예술의 반열에 올린 포토저널리즘의 선구자다. 어린 시절 그림을 배우던 카르티에 브레송은 1930년대 초, 사진작가 외젠 앗제와 만 레이의 사진을 접한 것을 계기로 사진의 길에 들어서게 됐다. 카메라는 그에게 눈의 연장이었으며, 그의 작업 방식은 직관과 본능에 의거하여 진정성을 포착하는 것이었다. “사진보다 삶에 더 관심이 많다”라고 말했던 그는 일체의 인위성에 반대하며, 연출이나 플래시, 사진을 크롭하는 행위 등을 배제하고, 대상이 형태적으로 완벽히 정돈되면서도 본질을 드러내는 순간에만 셔터를 눌렀다. 미학적 완전성과 휴머니즘을 동시에 담아낸 그의 작품 세계는 ‘결정적 순간’이라는 한 단어로 압축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전반적으로 카르티에 브레송의 생애 주기를 따라가고 있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전, 이탈리아 살레르노. 1933 / ©임정훈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전, 모로코 아실라. 1933 / ©임정훈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전, 스페인 세비아. 1933 / ©임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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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20세기 포토저널리즘을 대표하는 조직, 매그넘 포토스(Magnum Photos)의 설립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매그넘 포토스는 각국의 매체에게 필요한 사진을 공급하는 사실상의 사진 통신사 역할을 수행하며 특정 매체에 소속되지 않은 작가들에게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 세계에서 가장 유력한 보도사진 작가 조직 중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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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전, 테리아드 집에서의 앙리 마티스, 프랑스 생장캅페라. 1944 / ©임정훈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전, 생 라자르 역 뒤편, 프랑스 파리 유럽 광장. 1932 / ©임정훈

카르티에 브레송은 1947년 동료이자 걸출한 사진가들인 로버트 카파, 데이비드 시모어, 조지 로저, 윌리엄 밴디버트와 함께 매그넘 포토스를 설립한 이후 아시아로 떠난다. 그 해 12월 그는 인도에 도착하는데, 인도가 독립을 선언한 직후였다. 마하트마 간디를 만나 사진을 촬영하게 되는데, 며칠 뒤 간디는 암살 당했고, 카르티에 브레송의 사진은 간디의 생전 마지막 모습을 담은 사진이 된다. 그 후 간디의 장례식은 물론 화장부터 간디의 유해를 갠지스강에 뿌리는 장면까지 장례 의식의 과정을 필름에 담았고, 그의 사진은 세계 각지 언론의 지면에 실리게 된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전, 간디의 단식, 비를라 하우스, 인도 뉴델리. 1948년 1월 18일 / ©임정훈

1948년 후반,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라이프(LIFE) 매거진의 의뢰로 인도에서 중국으로 옮겨가 국민당 정부의 마지막 순간을 촬영했다. 1948년 12월 1일, 상하이에 도착한 카르티에 브레송은 그 후 베이징, 칭다오, 항저우, 난징으로 갔고, 중국 제국주의의 몰락과 공산주의 시대의 시작을 조심스럽게 기록했다. 그는 상하이에서 그 유명한 '골드 러시'의 현장을 사진에 담아내기도 했으며, 1950년 11월 프랑스로 돌아온 뒤 그는 예술 전문 출판인 테리아드와 함께 첫 책 '결정적 순간' 준비에 들어간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전, 중국 상하이. 1949 / ©임정훈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과 ‘결정적 순간’이 가장 잘 어울리는 이유에는 그가 누구나 쉽게 담아낼 수 없는 역사적인 순간들을 잘 포착해냈다는 점도 큰 역할을 하지 않을까. 세계 각지를 돌며 그가 담아낸 역사적인 ‘결정적 순간’과 모든 이들의 일상 속 ‘결정적 순간’은 그의 삶과 세상을 응시하는 예리하지만 따스한 시선을 발견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임정훈

INFO. 임 정 훈 기자

전시명:《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전: 결정적 순간》

전시 기간: 10월 2일까지

전시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전시 시간: 10시부터 19시까지

(18시 00분 입장 마감, 매주 월요일 휴관)

문의: 02-747-77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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