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표를 모아본 적이 있는가? 한때는 우표수집의 인기가 대단했다. 당시에는 학교 선생님이 어린 학생들에게 취미로 우표수집을 추천하기도 했다. 혹은 어린 시절 좋아하던 가수의 LP를 가져본 적이 있는가? 음악에 조예가 깊으신 부모님이나 ‘전축’이 집에 있었다면 한 번쯤은 LP를 가져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우표도 LP도 아니라면 어린 시절 갖고 놀던 장난감이나 즐겨봤던 애니메이션, 영화의 주인공이 누구였는지는 기억나는가? 손에서 놓지 않던 인형과 몇 번이고 돌려보던 비디오테이프 속 주인공들. 분명 누구에게나 있었을 기억의 조각들이다. 흔치 않지만, 그 편린에 대한 애정으로 기억의 조각을 모으는 사람들이 있다. 시대별로 사람별로 그 대상은 달라지지만 ‘수집’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길다. 우표와 LP, 장난감을 모으거나 어린 시절 좋아했던 애니메이션과 영화의 주인공을 본떠 만든 피규어를 모으기도 한다. 그 대상의 다양함만큼 수집하는 대상의 가치는 따질 수 없지만, ‘수집’하는 행위는 어느 순간 예술이 되곤 한다. 오늘, 취미를 넘어 예술의 경지에 오른 ‘수집’과 그 결과들을 함께 알아보자.









명품과 나란히 선 피규어  - 피규어뮤지엄W
 
청담동 한복판, 명품 브랜드의 플래그쉽 스토어와 고급 갤러리가 가득한 곳에 애니메이션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위트 있는 건물이 있다. 바로 <피규어뮤지엄W>다. 총 6개 층으로 이루어진 건물에는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망라한 피규어로 가득하다. 예술작품만큼이나 정교한 피규어는 영화 어벤져스 시리즈의 아이언맨과 헐크부터 약 2억 원에 달하는 ‘건담 RX-93’까지 규모와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양하다. 특히 실물 크기 피규어와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실제로 입었던 가죽 의상까지 그 다양함과 진귀함이 놀라울 따름이다. 유병수 대표와 임정훈 대표, 양유정 관장은 단순히 여러 종류의 피규어를 전시하는 박물관을 넘고자 조명부터 계단, 화장실 표지 하나하나까지 세심히 신경 써 피규어를 전혀 모르는 이들에게도 즐거움을 주고자 했다. 전시시설뿐만 아니라 추억의 전자오락기와 레고가 있어 아이와 어른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플레이룸까지 준비되어있어 어린아이부터 피규어 매니아까지 모두가 즐겁게 찾을 수 있다. 특히 인기리에 상영 중인 영화 어벤져스2의 모든 영웅을 만날 수 있어 영화를 함께 본 아이와 찾는다면 더욱 특별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손때묻은 장난감의 역사  - 토이키노
 
40만 개 이상의 컬렉션을 보유한 국내 최대 장난감 수집가 손원경 대표의 <토이키노>는 서울의 경향아트힐에 위치해있다. 컬렉션이 너무 방대해 실제 전시하고 있는 장난감은 약 5만 개 정도. 값비싸고 진귀한 피규어도 많지만 토이키노의 가장 큰 장점은 실제 손원경 대표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40대 중반인 손 대표가 어린 시절부터 가지고 놀던 장난감과 감명 깊게 봤던 애니메니션, 영화, 좋아했던 스포츠 선수까지 많은 이들이 동감할 추억이 빼곡히 전시장을 채우고 있다. 뽀빠이, 호돌이, 스누피, 이소룡 같은 추억의 인물과 캐릭터는 물론 수많은 올드토이까지 시대를 넘나드는 취향과 역사가 살아 숨 쉬고 있다. 장난감 하나하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어 문득 추억에 잠겨 쉽게 전시대 앞에서 발걸음을 띠기 어려울지도 모를 일이다. 토이키노는 반가운 추억을 찾는 부모와 최신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어린이까지 폭넓은 계층을 수용할 수 있는 곳이다. 아빠와 아이가 함께 간다면 아빠가 아이만 했을 나이에 갖고 놀았던 장난감을 아이와 함께 볼 수 있어 자연스레 나눌 이야기가 많아질 것이다. 물론 엄마와 딸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오래된 가치를 돌리는 턴테이블 - 최규성과 <한국대중음악박물관>
 
투박한 카세트테이프와 매끈한 CD에 이어 질감조차 사라진 음원으로 음악이 유통되는 시대이지만 아날로그 질감의 LP는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20여 년을 언론인으로 활동한 최규성 씨는 대중문화 전반에 걸친 광범위한 컬렉터이자 전문가로 명성이 높다. 특히 대중음악과 관련된 자료를 많이 모은 것으로 유명한데 한국 대중가요 음반, 공연 포스터, 티켓, 사진, 의상 등 모든 것이 그의 수집 대상이다. 2014년 출간된 <대중가요 LP 가이드북>은 그가 고심하여 고른 LP 318장의 사진과 정보를 바탕으로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를 풀어냈다. 집필 활동 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하는 그는 최근 경주에 문을 연 <한국대중음악박물관>의 건립을 도왔다. 박물관에 전시된 시대별 설명 및 원고를 작성했을 뿐 아니라 ‘최초’라는 타이틀이 붙은 여러 진귀한 자료를 제공하는 등 깊이 있는 지식과 안목으로 큰 역할을 했다. 전문가와 일반 대중 모두에게 유익한 대중음악 아카이브를 만드는 것이 꿈이라는 그의 진귀한 컬렉션은 <한국대중음악박물관>에서 일부 만날 수 있다.
 
 



수집과 교양이 만났을 때 - 우취인 김기훈
 
지난 2014년 세계에서 가장 진귀한 우표로 꼽히는 ‘1센트 마젠타 우표’가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950만 달러(약 97억원)에 낙찰됐다. 최근에는 샤넬, 루이뷔통, 지방시 등의 명품 브랜드가 정부에서 발행하는 우표 디자인에 참여해 아름다운 우표를 만들어내기도 하며 이브 생로랑, 코코 샤넬이 디자인한 우표는 예술로 평가받는다. 단순한 우표수집(Stamp Collecting)을 넘어 디자인과 스토리텔링이 더해지면 우표에 대한 학문적 취미인 우취(Philately)가 된다. 김기훈 씨는 우취 분야에서는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컬렉터다. 10여 년간 지구를 한 바퀴 반 돌아가며 완성한 그의 우취작품인 <맛의 역사>는 2007년 러시아, 2009년 중국에서 두 번의 금상과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았고 이어 영국, 일본, 호주, 태국, 한국에서도 대금상과 심사위원특별상의 영예를 안았다. 일정 규모 이상의 전시품, 희소가치, 주제 및 우표수집에 대한 깊은 조예가 있어야만 수상할 수 있는 대회에서 꾸준히 최고상을 받은 것은 우표의 가치와 더불어 그 ‘수집’의 가치와 깊이를 인정받은 까닭이다. 안타깝게도 현재는 해외에서 전시 중이라 한국에서 그의 컬렉션을 관람할 수는 없지만, 아이와 함께 가까운 우표 박물관이나 매년 여름 코엑스에서 개최되는 대한민국 우표전시회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취재 노일영  

사진: 여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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