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stationary ⓒ Ontwerpduo

 

 

종이란 식물성 섬유를 나무에서 분리한 뒤, 물 속에서 짓이겨 발이나 망으로 떠서 건조한 얇은 섬유 조직을 말한다. 어원은 고대 이집트의 파피루스라는 풀이다. 파피루스는 단순히 식물의 내피를 가공해 만든 것으로 종이의 기원은 아니다. 종이의 기본 원료는 셀룰로오스이며, 모든 종이에 공통으로 들어가 있다. 면, 아마, 닥, 뽕나무, 짚, 대나무 등 다양한 원료가 제지로 사용된다.

 

 

 

JH5 ⓒFormakami

 

 

 

누군가는 종이의 시대가 갔다고 말한다. 실제로 페이퍼리스의 흐름은 시작된 지 오래되었고, 2013년 이후 종이 생산•소비량은 점점 줄어만 가는 추세다. 이는 환경 오염과 비용절감, 효율성의 이유일 것이다. 종이는 정말 환경 오염의 주범일까? 종이의 사용을 멈추지 않는다면 까만 지구에 살게되는 것일까? 사실 우리는 이미 종이를 ‘잘’ 활용해왔다.

 

 

 

 

Airvase ⓒ Torafu Architects

 

 

 

대부분의 종이는 천연 원시림이 아닌 별도의 농장에서 자라는 나무로 만들어진다. 어느 열대림의 우거진 나무가 우수수 밀려 나가는 영상을 한 번쯤 본 적 있을 것이다. 사실 많은 열대림은 농경지를 조성하기 위해 사라진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아마존 지역의 산림 또한 약 70%가 대규모 상업 농지로 쓰이기 위해 변한 것이다. 한국은 종이 생산량 세계 5위, 재활용률 세계 1위인 국가다. 특히 재활용률은 90% 수준으로, 대부분의 종이가 사용 후에도 여러 번 쓰인다. 종이는 매립되더라도 분해 속도가 매우 빠르며, 유해 물질이 없기 때문에 토양을 오염시키지 않는 장점이 있다. 뿐만 아니라 생산과정에서 신재생에너지 사용 확대를 통해 기존 47%에 달하던 화석연료 사용량을 11%로 줄여 환경 오염을 최소화한다.

 

 

 


Kurage ⓒ Nichetto Studio

 

 

 

종이가 없었을 때의 인류는 나무, 암석, 도자기, 양피지 등에 문자를 표기했으나, 이는 대부분 무겁고 부피가 크며 처리 과정이 복잡하고 값이 비쌌다. 중국 왕실에서는 주로 비단에 글을 쓰곤 했는데, 한두 번 쓰고 비단을 버리는 것이 큰 부담이었던 왕실 재정 담당 환관 채륜은 미숙하던 종이제조법을 체계화해서 종이의 대량생산을 이끌어냈다. 종이의 기원은 이보다 150년 정도 거슬러 올라가 있으며, 주로 마포와 마승 등 넝마를 원료로 만들었다. 중국의 제지 기술은 고구려의 영토가 남만주 일대까지 확장되었을 때 전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의 [조지사화]에서는 백제에 불교를 전한 마라난타가 제지 기술을 갖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 [송사]에서 신라의 백무지, 우지, 학청지 같은 종이들이 생산되었다는 기록을 찾을 수 있다.

 

 

 



Timber ⓒ Paperpop

 

 

 

서기 751년, 고구려 유민 출신 고선지는 당나라 군사를 이끌어 이슬람군과 탈라스에서 전투를 벌이다 많은 부하들을 적의 포로로 빼앗겼다. 포로들은 사마르칸드로 잡혀가 제지 기술을 전파하게 된다. 사마르칸드의 제지 기술은 793년 바그다드로, 960년 이집트로, 1100년 모로코로, 1151년 스페인으로, 1420년 인도에까지 확산되었다. 그러나 서양 문물이 수입되는 19세기, 중국 제지술은 정교한 기계와 새로운 연료로 변모되어 다시 동양으로 역수입되기 시작했다.

 

 

 



Unstationary ⓒ Ontwerpduo

 

 

 

가장 가까이 있는 인쇄 종이부터 펄프 또는 폐지를 배합해 만든 판지까지, 종이는 2000년간 여러 형태로 우리 곁을 지켜왔다. 일본의 건축가 반 시게루는 종이를 이용해 건축물을 짓는다. 그는 종이를 ‘진화된 나무’라고 부르며 자연재해를 입은 주민들을 위해 임시 주택과 교회를 건설해준다. 이재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뿐 아니라 아름다운 건축물로 마음의 치유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이렇게 지어진 건축물은 단기간에 건설과 해체가 가능해 긴급상황에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Unstationary ⓒ Ontwerpduo

 

세계적인 가구 제조 기업 이케아는 한국의 두 매장을 포함해 세계 35개국에 약 260여 개의 매장이 있다. 모던하고 트렌디한 디자인, 저렴한 가격 덕에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이케아의 가구는 골판지를 빼고 논하기 어렵다. 책상, 침대, 탁자 등 일부 제품에 벌집 구조로 엮은 종이를 넣어 만드는 것이다. 또, 간편한 운반을 위해 포장과 배송에도 골판지를 사용하며 효율성을 높였다.

 

 

김리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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