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으로 관계를 구현하다 - 102design 문선희 대표
 
공간 속에는 수많은 관계들이 존재한다. 사람과 사람, 사물, 그리고 공간을 둘러싸고 있는 외부 환경들과 보이지 않는 그 무엇까지. 102design은 ‘관계 맺음’에 가치를 두고 공간을 디자인한다. 대학로에 위치한 102design 사무실에서 문선희 대표를 만났다. 첫 만남이라 어색함도 잠시, 2시간 가량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인생상담까지. 차분한 사무실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유쾌했던 대표 덕분이었을까. 우리는 그 곳에서 또 하나의 관계를 형성했다.

 
Q. 단독주택이나 공동주택 등 주택 설계 일을 주로 하고 있다. 어떤 것을 느끼나?
 
A. 우리나라 주거 형태를 보면 약 80% 이상이 아파트 생활을 한다. 그런 만큼 아파트 평면 개발을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일이고, 주거 문화를 리드해 간다는 것에 있어서 책임감을 느낀다. 하지만 불특정 다수를 위한 개발이다 보니 디테일하게 접근하기가 어렵다. 주거 공간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생활하게 될 사람이 중요하다. 공동주택은 사회적인 트렌드나 라이프 스타일을 크게 보기에는 좋다. 하지만 사람을 섬세하게 들여다보고 디테일하게 무언가 더 만들어 낼 수 있는 것들을 구현하기는 조금 힘든 것 같다.

Q. 주택을 설계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방향성이 있나?
 
A. 공동주택이나 단독주택이나 똑같이, 나는 공간을 디자인할 때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소통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나와의 소통도 있고, 가족간의 소통도 있다. 또 가족간의 소통에는 부부간도, 부모 자식간도, 형제간도 있다. 여기까지는 사람 대 사람의 소통이다. 그리고 또 그 외적으로는 환경과의 소통이 있다. 디자인할 때 ‘어떻게 하면 이 관계들을 더 잘 끌어낼 수 있을까’ 고민한다. 사실 아파트 구조가 단절된 공간이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옹벽으로 모두 닫혀있는 구획된 공간 안에 침실, 거실, 드레스룸 등이 정해져 있다. 공간 자체도 단절되어 있는데, 우리 나라 같은 경우엔 자녀 교육 때문에 거의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없다. 수직 공간이다 보니까 외부환경과의 접근은 더욱 힘들다. 그렇다고 우리가 아예 아파트를 벗어날 수는 없지 않나. 그러면 ‘그 안에서 어떻게 좀 더 뭔가를 다르게 할 수 있을까’를 항상 고민한다.

 
Q. 단독주택 의뢰하시는 분들은 어떤가?
 
A. 대부분 젊은 분들이 오신다. 재미있는 부분이 단독주택을 의뢰할 때 특별한 의견이 많이 없다. 대부분 자녀를 위한 공간만을 생각해온다. 많이 고민하고 계획해서 의뢰해오기 보다는 막연하게, 혹은 층간 소음이나 상황적으로 집을 지어야 해서 의뢰해온다.

Q. 다양한 분들이 구체적인 의견없이 의뢰해오면 어떻게 접근하나?
 
A. 현재 사시는 공간을 제일 먼저 가보고 계속 대화를 나눈다. 처음에 클라이언트에게 간단하게 뭐라도 적어서 달라고 말씀을 드린다. 평소의 생활패턴이라든지, 취향이라든지 그 무엇이든. 첫 미팅 때는 어려워하시지만 숙제를 드리면 그때부터 집에 대해서, 원하는 것에 대해서 두 분이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것을 토대로 초안을 잡고 얘기를 하고 묻다 보면 그 때부터 뭔가 하나씩 나온다. ‘두 분은 어떤 스타일이구나, 관계는 어떠시구나.’ 그렇게 접근을 한다. 그러다보니 다른 곳과는 달리 4~5개월 정도의 설계 기간을 잡고 시작한다.
 
Q.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가 있나?
 
A. 프로젝트를 하다보면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것들이 나올 때가 있다. ‘판교 봇들마을’이 그 중 하나다. 곳은 아파트다. 그런데 옹벽이 아니고 기둥지기여서 벽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벽을 다 철거하고 새로 레이아웃을 잡았다. 클라이언트가 한옥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아파트라는 공간에 한옥을 구현해야 했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 아파트라는 공간 상 층고도 제한이 있었고, 한옥은 자연과 함께 어우러져야 그 멋이 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 번의 미팅을 통해 방향성을 바꿨다. 아내 분이 서예를 하셨는데, 서예 작업실도 함께 마련했다. 사실 이 집은 한옥에 대한 생각과 서예 작업공간에 중심을 두고 했던 프로젝트다. 서예 작업실은 원래 확장되어 있는 방이어서 외부로 통하려면 이 방을 지나쳐야 했다. 하지만 이 방을 온전히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주고 싶어 양쪽 공간을 터서 독립된 작업실로 만들었다.
 
 
Q. 뒷 공간이 복도같기도 하고 한옥의 마루를 연상시킨다
 
A. 클라이언트분이 입주하고 나서 생활하시다가 그 공간이 너무 좋다고 얘기를 해오더라. 바깥 전망이 좋아서 손님들이 오셔도 식탁에 앉아서 얘기하다가 거기에 앉아서 시간을 보낸다고. 그렇게 하나씩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나올 때, 내가 생각했던 것들이 제대로 구현이 되고 느끼는 만족감과는 다른 기쁨으로 다가온다.
 
Q. 관계 맺음이나 소통에 중점을 두는 이유는?
 
A. 아파트가 단절된 공간이라고 생각해서인지, 관계 맺음이나 소통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주거 공간은 한가지라고 단정하기 힘든 복합적인 공간이다. 그래서 하면 할수록 더 어렵다. 집은 내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항상 생활하는 공간이다. 그래서 품는다고 할까? 그런 것이 분명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사람과의 소통 혹은 사물, 외부 환경과의 소통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바람을 맞으면서도 기분이 바뀌지 않나.

Q. 앞으로의 계획은?
 
A. 계획이라기보다는 일을 하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 ‘일반인들과 디자이너들을 좀 더 쉽게 이어줄 수 있는 통로가 없을까’하는. 요즘 일반인들은 디자인에 관심이 많다. 예를 들면 어떤 디자인 제품을 사려면 어디로 가면 되는지 안다. 그런데 내가 어떤 공간을 디자인하고 싶을 때 자기가 원하는 디자이너를 찾기는 어렵다. 가끔 ‘내가 이렇게 하고 싶은데 그런 데가 어딨는지 모르겠다’라는 얘기를 듣는다. 그만큼 디자이너와 일반인 사이의 통로가 아직 마련되지 않은 것 같다. SNS를 통해서 많은 디자이너들이 개인적으로 자신의 작업을 올리지만 그것보다는 조금 더 일반적인 통로가 없을까 고민 중이다. 보통 디자이너라고 하면 어렵게 느끼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디자이너는 공간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한 사람이지,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디자인에 대한 경계가 조금 낮아지면 더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고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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