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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칼더: 모빌을 상상하다

모빌로 대표되는 알렉산더 칼더, 그 작품세계의 근간을 만나다

 

 

예술과 특별히 친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알렉산더 칼더(Alexander Stirling Calder)의 이름을 잘 모를 수 있다. 그는 같은 이름을 쓰는 사람 중에는 알렉산더 맥퀸(Lee Alexander McQueen)처럼 요즘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도 않고, 예술가 중에서는 피카소(Pablo Ruiz Picasso)만큼 유명하지도 않으며,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만큼 현대 미술에 널리 영향을 끼치지도 않았다. 그러나 키네틱 아트(Kinetic Art)와 모빌(Mobile)의 영역에 이르면 그의 이름은 어렵지 않게 회자된다.

 

 

 

 


알렉산더 칼더. 그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조각가 중 하나로, ‘모빌의 창시자’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미국 펜실베니아의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어렸을 때부터 의자에서 장난감까지 다양한 ‘작품’을 만들곤 했다. 그는 공과 대학으로 진학, 엔지니어로 일하게 되지만, 그곳에서 ‘어긋남’을 느끼고 예술에 대한 열정을 가진 채 뉴욕으로 향하게 된다. 그는 이후 조각이라는 장르에 변화를 몰고 온다. 몬드리안을 만난 이후 그는 추상 세계에 빠져들게 되고, 원색으로 칠한 여러 형태의 조각을 메탈로 된 실 끝에 매달아 공기에 따라 움직이게 한다. 모빌의 탄생이었다.
 

 

 

 

K현대미술관은 이번 겨울 알렉산더 칼더를 되돌아보는 회고전을 연다. 기존 칼더를 조명했던 전시는 모빌의 창시자인 칼더의 면면에 집중했지만, K현대미술관은 칼더의 작품 세계의 근간을 이루는 회화 작품들에 주목했다. 단지 회화 작품들을 벽에 걸어 관객을 객체로 두는 데 그치지 않고 2D와 3D가 융합된 구조물들로 칼더의 예술 세계 속에 관객이 직접 걸어 들어와 작품을 느끼고, 체험할 수 있도록 도왔다. IXDesign과 함께 칼더의 예술 속으로 한 발짝 다가가보자. 화려한 모빌만이 칼더의 예술 세계를 채우고 있었던 것은 아니란 걸 곧 알게 될 것이다.
 

 

 

 

 

 

예술가로서의 첫걸음을 내딛다

 

칼더는 1923년부터 뉴욕 예술 학생 리그에 등록해 수업에 참여했다. 그때 만난 보드만 로빈슨(Boardman Robinson)에 대해 칼더는 이렇게 회고했다. “그는 훌륭한 선생님이었다. 나에게 펜과 단선으로 드로잉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던 사람이다. 몸집이 크고 붉은 머리에 수염이 난 그는 정말 인간적인 사람이었다.” 전시장에 들어가서 만나는 첫 공간, 이곳에서 관객들은 1925년경 칼더가 처음 작품 활동을 시작했을 무렵의 드로잉을 만날 수 있다. ‘움직임’에 대한 칼더의 관심과 특징을 표현하는 재능을 읽어내게 되는 공간이다. 칼더는 다양한 종류의 동물을 그려내며 유머 감각을 발휘하기도 했다. 볼록한 뱃살을 가진 코끼리는 정치인에 비유했고, 그들의 움직임을 ‘우아하면서도 율동적’이라 강조하기도 했다.
 

 

 

 

 

예술계의 총아, 칼더의 등장

 

그 다음 공간에서 우리는 칼더의 작품 세계 전반에 영향을 미쳤던 ‘서커스’를 목격하게 된다. 서커스는 칼더의 인생에서 무척 중요한 경험이었다. 1926년 파리로 유학을 간 후 그는 서커스 공연을 통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서커스는 철사, 가죽, 천 등 다양한 재료로 이루어졌으며, 칼더가 직접 조종하는 일종의 ‘공연예술’이었다. 가족과 친구들이 첫번째 관객이었으나 이윽고 그는 유럽 곳곳을 돌아다니며 공연을 하는 유명인사가 되었다. 장 콕토, 르 코르뷔지에, 테오 판 되스버그, 미로, 레제, 이사무 노구치, 안드레 케르테즈 등 다양한 예술가들이 그의 팬이 되었다.
 

 

 

알렉산더 칼더는 일생에 걸쳐 12개 이상의 공연 무대, 세트장, 의상을 제작했는데, 그중 잘 알려진 것은 발레리나이자 안무가인 미사 그레이엄과 함께한 1935년의 파노라마, 36년의 수평선이다. 칼더가 만든 발레 무대 역시 인상적이다. 모빌과 스태빌이 설치되어 있고, 과슈화가 배경에 걸린 무대는 니콜로 카스티글리오네, 알도 클레멘티, 브루누 마데르다가 작곡한 전자 음악에 맞춰 상연되었다.
 

 

 

피에트 몬드리안과 조우하다

 

칼더는 프레데릭 키슬러(Frederick Kiesler)의 소개로 윌리엄 아인슈타인(William Einstein)과 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의 작업실을 방문하게 된다. 그는 몬드리안의 예술 실험을 보고 감명을 받아 한 가지 제안을 하게 된다. “이 사각형들이 움직인다면 꽤 재밌을거야. (Perhaps it would be fun to make these rectangles oscillate.)”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달랐다.
 

“아니, 그럴 필요 없어. 내 그림은 충분히 빠르거든.
No, it is not necessary, my painting is already very fast.”

칼더는 이 대답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칼더가 ‘추상’의 세계에 빠진 건 정확히 그때부터였다. 그러나 그 거절에 동의 했던 것 역시 아니었다. 그는 추상 미술을 움직이게 만드는 작업에 착수했고, 곧 머지 않아 ‘모빌’이 탄생하게 된다.

 

 

 

초현실주의와 호안 미로 알렉산더 칼더는 파리로 이주한 후, 다양한 예술가들과 끊임없이 교류했다. 대표적으로는 마르셀 뒤샹과 호안 미로(Joan Miro)를 꼽을 수 있다. 1928년 12월 <칼더의 서커스>에 참여했던 호안 미로는 이후 지속적으로 칼더와 인연을 이어왔다. 그와의 교류를 통해 칼더는 호안 미로의 초현실주의적 성향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이는 이후 칼더의 작품에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되었다. 1936년 파리에서 열린 초현실주의 전시에 참여하는 등, 칼더는 초현실주의 미술 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오늘날에는 초현실주의와 분리되어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칼더의 그림에서 각 요소들이 맥락 없이 얽혀 있는 형태, 의미 없이 배치된 모습은 분명 초현실주의와 궤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칼더는 우주에서 영감을 받은 그림들을 자신만의 관점으로 펼쳐나가기 시작했다. 우주와 행성. 칼더는 이 거대한 세계를 각기 다른 요소로 구성해냈다. 다양한 모양과 색, 밀도와 온도를 지닌 요소들은 둥둥 떠 있으면서도 멈춰 있고, 물결이 되기도 했다. 칼더는 다양한 과슈화를 그려냈다. 태양, 달, 별의 형태를 띤 상징을 통해 그려낸 우주는 나선, 피라미드, 별자리, 풍경, 인간의 형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매우 단순화된 인체의 모습, 또는 교차하는 선들로 그린 머리는 아프리카 부족 미술에서 기원한 프리미티비즘(Primitivism)에서 영향을 받은 것처럼 보인다.
 

 

 

칼더의 작업실을 상상하다 알렉산더 칼더는 앞서 말했듯 흔히 모빌의 창시자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 이
전에 화가이자 조각가였고, 또 배우였으며 지휘자이기도 했다. 모빌의 원형을 담고 있는 그의 드로잉 작
업들은 어떻게 그가 모빌을 떠올렸고, 탄생시켰는지 그 기원을 추측하게 한다. K현대미술관 학예팀은 모
빌이 탄생하기 직전, 그 순간을 관객이 직접 체험하고 즐길 수 있도록 칼더의 작업실을 상상해 구성했다.
 

 

 

 

K현대미술관이 준비한 칼더의 회고전은 아쉬운 부분도 적지 않았다. ‘모빌’로 대표되는 칼더의 작품세계
를 마주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칼더의 팬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조차 쉽게 접하기 어려웠던 그의 회화 작품을 한 데 모았다는 데에 분명 의의가 있다. 모빌 그 자체에 주목하기보다는 모빌이 탄생하는 과정에 주목했던 K현대미술관의 전시, 《알렉산더 칼더: 모빌을 상상하다》 展이었다.
 

이찬우 기자
ixd.cule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