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일렁거리는 형식, 어디에도 머물지 않는 고유한 건축. 국민대학교 김개천 교수

 

김개천은 국민대학교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원장이며 건축가이자 공간 디자이너다. 동국대 선학과에서 철학을 전공했으며, ‘무색의 공간’, ‘한국건축의 미와 정신세계’, ‘선의 건축미학에 관한 연구’ 등 동양철학과 건축미학에 관한 여러 논문들을 발표해왔다. 대표작으로는 경주동국대선센터, 강하미술관, 한칸집, 세계평화대탑 등이 있으며, 2013년 대통령 근정포장, 한국 건축가 협회상, 황금스케일상, 국무총리 표장, 올해의 디자이너상, 대한민국 디자인 대상 등을 수상했다.

 

한칸집, 2012 - © 박영채 사진작가

 

Q. 건축가, 디자이너, 교수 김개천이 걸어온 길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를 부탁한다.

 

A. 특별할 것은 없었다. 20대 후반에 처음 해외로 나가 3년 동안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모래만 봤다. 그 후 3년 동안은 알래스카에서 눈(雪)만 봤다. 그다음 3년 동안은 LA에서 도면만 그렸다. 그러다가 귀국을 해서 설계사무소(이도건축)를 차렸고, 10년 동안 운영하다가 국민대학교로 오게 됐다. 과거를 잘 기억하지 않는 편이라서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국민대학교에 온 지 이제 20년 가까이 되어간다.

 

Q. 동국대학교에서 선학을 전공했다. 동양 철학에 대한 이해가 김개천의 건축 철학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A. 굉장히 많은 영향을 미쳤다. 흔히 디자이너들은 자기가 보는 것, 어릴 때 추억, 주변의 경험에서 자극을 받아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나는 그런 데에서 별로 자극을 받지 않는 편이다. 오히려 ‘생각’에서 많은 자극을 받고 영감을 얻는다. ‘생각’이라는 것은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가’, 가령, ‘아름다움은 무엇인가’, ‘디자인의 역할은 어때야 하는가’와 같은 생각을 말한다. 지금까지 작업해온 것들도 그때그때의 생각들로 인해 만들어진 것들이다. 특히 30대 때에는 선학(禪學)에 빠져 있었는데, 선(禪)은 ‘머물지 않는 형식’이며, ‘머물지 않는다’는 것은 ‘어디에도 있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이 지금까지 나의 작업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Q. 한국의 전통 건축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건축물과 공간 디자인을 통해 드러나는 ‘한국적인 아름다움’은 어떤 것이라 생각하는가?

 

A. 답변하기 쉬운 질문은 아니다. 누구든 “이것이 한국적인 아름다움이다.”라고 규정짓기는 어려울 것 같다. 왜냐하면 한국적인 아름다움 역시 시기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보았을 때 근대 이전 중에서도 가장 최근, 조선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면, ‘알 수 없는 경지, 형식에 이르고자 하는 것’이 조선의 아름다움이라고 본다. 예를 들어 높은 바람이 부는 것. 장고한 물결이 일렁거리는 것과 같은 형식을 내가 생각하는 조선의 아름다움이라 느낀다.

 

그렇다면, 이러한 조선의 아름다움이 잘 적용된 건물은 어떤 것이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경회루가 그렇다고 생각한다. 경회루 그 자체는 스스로 자신의 것을 가지고 있는 게 없다. 텅 비어있다. 그런데 아무도 텅 비어있다고 느끼지 않는다. 마치 바람으로 만든 건축 같다.

 

황룡사, 2012 - © 박영채 사진작가

 

회재, 2010 - © 박영채 사진작가

 

Q. 미스 반 데어 로에의 표현을 빌려 ‘LESS BUT MORE’로 동양의 현대 건축을 평했다. 해설을 하자면?

 

A. 동양의 현대 건축 전체를 말했다기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건축을 함축적으로 말한 것이다. 미스 반 데어 로에의 Less is more는 근대의 건축을 굉장히 잘 설명하는 말이다. 나는 그 표현에서 Less는 Simple이 아니라 Almost nothing이라고 해석했다. Almost nothing은 디테일만 남아있는 상태. 그는 ‘디테일 속에 신이 있다’라는 말도 함께 남기지 않았나.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디테일로만 이룩한 건축’, 그것이 미스의 건축이라 생각한다. 핵과 같은 건축. 핵은 모든 것이 응축된, 무엇이든 될 수 있는 형식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본질, 에센스만 남아있는 형식에 큰 관심이 없다. 오히려, 조금 전에 선에 대해 이야기할 때 언급했듯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은 형식’에 더욱 관심이 많다. Less is more는 More가 되기 위해 Less를 하겠다는 말이다. 그러나 Less but more는 Less한 순간 동시에 More가 되고, More하지만 Less이기도 한 것, 다시 말해 계속해서 일렁거리는 형식을 표현한 말이다. 그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는, 완성되지 않은 고유의 형식.

 

강하미술관, 1999 - © 박영채 사진작가

 

봄 미술관 - © 박영채 사진작가

 

Q. 일각에서는 한국 건축계에서는 이웃한 일본 등에 비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건축가가 부족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에 대한 김개천 교수의 생각을 듣고 싶다.

 

A. 여러 의견이 있겠지만, 내 생각에는 우리가 우리의 것을, 우리만의 고유한 것을 이야기하기 시작한 시점이 얼마 되지 않았다고 본다. 여기서 말하는 우리만의 고유한 것은, ‘우리나라의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의 것, 디자이너마다 자신의 고유한 것까지를 의미한다. 그동안 우리는 남의 것을 좇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는다는 것의 기반은 우선 우리만의 고유한 것을 가져야 가능하다. 때문에 당연히 더욱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이제 시작이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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