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예술이라고 하면 틀에 박히고 판에 박힌 것들만을 떠올린다. 그러니까 루브르 박물관 어느 한 쪽에 걸려 있을 것 같은 작품들, 르네상스 시대에 한 이탈리아 조각가가 만들었을 것 같은 석상, 메가박스보다는 아트나인에서 상영해야 할 것 같은 영화들. 그러나 틀을 깨부술 필요가 있다. 회화, 유화, 그래피티, 그래픽 디자인, 시, 소설, 에세이, 영화, 다큐멘터리, 작곡, 작사, 연주, 노래, 사진. 세상에는 우리가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예술이 있고, 그 수만큼이나 다양한 종류의 예술가들이 있다. 다양한 종류의 예술가가 있다는 것, 이 말은 곧 당신 역시 아티스트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예술의 품은 넓고, 당신이 할 일은 자신만의 무언가를 만들어 그저 그 품에 안기는 것이다. 아티스트가 되기를 주저하지 말자. 당신이 그리고 싶은 것, 쓰고 싶은 것, 찍고 싶은 것, 무엇이든 괜찮다. 당신 역시 아티스트가 될 수 있다. IXDesign에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준 세 작가들처럼 말이다.

 

 

 

김지윤은 산업 디자이너다. 그러나 산업 디자인이라는 단어만으로 그를 설명할 수는 없다. 그는 작품의 형태를 넘어 컨텍스트에 관심을 가진다. 성균관대학교 경영대학원 EMBA를 졸업한 그는 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해 LG그룹의 종합 광고대행사 GIIR 산하의 제품, 서비스, 브랜드 컨설팅을 해왔다. 현재 건국대학교 산업 디자인과 겸임교수로 재직하며 자신의 스튜디오를 통해 분야를 가리지 않는 다양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Q. 작가님, IXDesign 독자 분들께 인사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Jiyoun Kim Studio를 이끌고 있는 디자이너 김지윤입니다. 항상 실험적인 콘텐츠를 새로운 방식으로 보여주는 IXD를 잘 보고 있었는데요. 좋은 기회를 통해 인사드릴 수 있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Q. 산업 디자인을 전공해 관련된 분야에서 계속해 일해오고 계신데요.
A. 대학을 졸업하고 팬택에서 디자인을 시작했어요. 제품을 디자인하는 일들에 가장 자신감을 갖고 있고 프로젝트도 제일 많습니다. 그러나 사실 현재 저희 스튜디오에서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들은 브랜딩, 리빙, 전략컨설팅 등으로 제품의 shape만을 정의하는 전통적 관점의 산업 디자인과는 조금 다르죠. 저희는 shape뿐 아니라 context에 더 집중하려 하는 편이에요.

 

 
Q. 일상에서 어떻게 디자인을 이끌어내시나요.


 A. 저는 디자인을 타자가 공을 타격하는 것에 비유하곤 해요. 타자는 좋은 타격을 위해 훈련하고, 폼을 모니터링하죠. 경기장에서는 훈련으로 체화한 감각을 이용합니다. 디자인도 비슷해요. 훈련을 통해 체화한 감각으로 일상 속에서 인사이트를 얻고, 스케치로 구체화하는 것이죠.


Q. 작가님의 작품과 작업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어떻게 얘기할 수 있을까요?


 A. Communication Based Design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합니다. 디자인 기획과 의사결정 이면에 그 대상이 가져야 하는 context가 명확하게 만들어지고, 이것이 핵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이것이 어떻게 인식될까'에 대한 답을 찾는 디자인입니다.

 

 

 

Q. 디자이너이지만, 2014년에는 성균관대학교 경영대학원 EMBA를 졸업해 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셨습니다. 경영학을 배워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A. 인하우스디자이너로 회사생활을 시작했을 때 다른 디자이너들에 비해 많은 양산 프로젝트를 경험할 기회가 주어졌어요. 제조회사에서 생산 프로세스를 될 수 있는 한 많이 해보고 싶었죠. 그러다보니 디자인과 산업이 충돌하는 지점이 생겼어요. 날카로운 디자인적 관점, 좋은 조형, 좋은 소재와 컬러로는 극복할 수 없는 부분이었어요. ‘산업과 협업해야 하는 제품 디자인의 한계에서 어떻게 하면 더 좋은 디자인 의사결정을 유도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였어요. 야간 대학원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실무에서 오랜 경험을 쌓은 분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Q. 구독자 분들 중, 작가가 되기를 꿈꾸고 또 시도하는 분들에게 한 마디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A. 다른 사람과 차별화된 시각으로 대상을 바라보는 훈련을 꾸준히 하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저희도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우리만의 시각을 충분히 담아냈는지 의미를 갖고 있는지 고민하며, 도시를 관찰하는 자재 프로젝트를 끊임없이 계속 진행해 나가고 있습니다.

 

 

모션그래픽 디자이너 이연지

 

Yeonzip, Project 5G, 이연지. 모션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그가 가진 많은 이름들이다. 그는 비전공자 출신이지만 당당하고 능숙하게 자신만의 재기 넘치는 그래픽을 방송과 유튜브 등 플랫폼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는 자신이 그랬듯, 꼭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작품을 만들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Q. 작가님, IXDesign 독자 분들께 인사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독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인터뷰 경험이 많지 않아 이렇게 지면을 통해 인사를 드리는 것이 어색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네요. 저는 비전공자 출신의 모션그래픽 디자이너로 여러 장르의 영상 작업을 하고 있는 이연지입니다. 연집(Yeonzip)이라는 작가명으로 활동하고 있고 동시에 Project 5G라는 작은 콘텐츠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어요.

 

Q. 운영하고 있는 스튜디오 Project 5G에 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이 팀을 함께 운영하고 있는 파트너의 이름의 첫 글자와 제 이름 마지막 글자를 따서 만든 것으로, 10년도 전에 정해 두었어요. 5G 시대가 이렇게 빨리 올 줄 모르고 지은 이름입니다. (웃음) ‘5G’는 디자이너인 저와 PD인 파트너가 함께 만든 팀이고 아주 작은 회사에요. 주로 영상 기반의 콘텐츠를 제작 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방송과 광고 외에도 교육 콘텐츠나 유튜브 예능 콘텐츠도 하고 있어요.

 

 

Q. 스튜디오가 지향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A. 저희는 과정이 즐거운 작업을 지향하는데요.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데 있어 많은 크리에이터 분들에게 워라밸을 추구하기가 사실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일상생활 중에 문득 문득 떠오르는 것들을 작업에 녹여내야 하기 때문인데, 대신 저희는 놀 듯 일하고 일하듯 놀 수 있는 작업환경을 만들어나가려고 해요. 출퇴근은 자유롭게, 회의는 놀면서와 같은 것들을 스튜디오 팀원들과 함께 하고 있어요.
 

 

Q. 어떻게 디자이너가, 더 나아가 ‘모션 그래픽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A. 모션그래픽 분야에 제가 빠지게 된 것은 여러 가지 요소가 합쳐진 예술이기 때문이에요. 시각적 요소와 청각적 요소 그리고 어떻게 타이밍을 조절하느냐에 따라 결과물이 확확 바뀌는 것이 흥미로워요.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정말 정말 좋아했어요. 미대에 입학한 것은 아니었지만 영상제작 툴을 다루는 대학수업이 있었는데, 그 수업을 들으면서 모션그래픽을 해야겠다고 확실하게 결정을 내린 것 같아요. 앞서 말한 모션그래픽의 매력에 빠져버렸거든요.

 

 


Q. 왜 회사를 나와 독립 스튜디오를 운영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A. 사실 제 인생이 좀 더 풍부해지길 바라는 마음에 도전해봤어요. 어느날, 제 미래가 보이더라고요. 내일이 어떤 하루가 될지 예상이 되고 1년 뒤, 2년 뒤 제 모습이 상상이 갔어요. 딱히 회사에 큰 불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회사에 있으면서 스스로도 “내가 지금 성장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종종 할 수 있을 정도였죠. 그러나 회사의 컬러 아래 있어야 하기에 다양함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어요. 마침 친구도 같은 시기에 비슷한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아요. (이후에는) 작업하는 방식은 똑같으니 별 차이 없어 보이겠지만, 방송국을 벗어나니 플랫폼의 성격, 영상의 목적, 장르에 따라 구성과 작업 방향도 달라지더군요. 다양함을 찾게 된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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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작가님은 작업을 하시며 주로 어느 곳에서 영감을 받으시나요
 A. 저는 밖에서 쌩뚱 맞게 뭔가 떠오를 때가 많아요. 뭔가 생각이 나면 노트나 스마트폰 메모에 잘 기록해두는데요. 짧게 낙서하기도 하고 글을 막 적어두기도 해요. 짧은 일기처럼요. 개인작업이든, 외주 프로젝트든 바로 바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는 기록해뒀던 것들을 뒤져보고 적용할만한 아이디어가 있으면 잘 가져다 씁니다. 낯선 음악을 듣고, 혼자서 가보지 않았던 카페를 가기도 해요. 거기서 왕창 또 메모하고 작업실로 돌아옵니다.

 


Q. 지금까지의 작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혹은 가장 까다로웠던 작품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JTBC ID 영상일 것 같아요. 그건 저의 다른 작업과는 달리 프레임 바이 프레임으로 정말 다 그렸던 작업이었거든요. 회사에서 원하는 분위기와 방향이 확실했던 터라 키워드를 추려 메시지를 정하고 그를 바탕으로 콘티를 그리던 기획단계는 정말 수월했는데요. 늘 애프터 이펙트 툴을 이용해서 모션을 줬던 것과는 다르게 15초를 이루는 최소 360장을 전부 그려야 했던 작업이었어요. 두 번째로는 전체관람가 프로그램 타이틀인데요. 늘 일러스트 기반의 모션그래픽만 작업하다가 실사 소스를 활용해 콜라주를 표현했던 프로젝트였어요. 아무래도 사진소스다 보니 모션작업에 제한이 생기더라고요. 움직일 수 있도록 마음껏 변형을 못하니까요. 대신 조금이라도 움직임을 줄 수 있는 개체를 늘리는 방향으로 작업했어요. 늘 그림을 그려서 작업해왔던 제게는 다른 형식의 작업이었어서 기억에 남아요.

 

 


Q. 구독자 분들 중, 아티스트가 되기를 꿈꾸고 또 시도하고 있는 분들에게 한 마디 조언을 해주신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A. 비전공자 출신의 디자이너라고 말씀 드렸는데요. 꿈은 꾸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꿈을 위해 가던 길을 저는 가지 않았어요. 대신 표현하고 싶은 것들을 꾸준히 작업하다 보니 그게 제 포트폴리오가 되었고 디자이너로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 있게 됐어요.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제게 편입이라던가 학원 등록에 대해서 질문을 하시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요. 환경이 된다면 정식으로 공부하면 좋겠지만 꼭 전공으로 공부하지 않아도 아티스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다양함을 응원해요. 그 다양함이 훨씬 좋기도 하고요.

 

 

테이프 아티스트 조윤진

 

조윤진 작가는 테이프 아티스트다. 그는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아티스트들을 테이프로 표현한다. 테이프는 그저 무언가를 붙이고 고정할 때 쓰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의 손길 아래서 사람의 얼굴로, 또 배경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앞으로도 계속해 그리는 것이 목표라는 그의 이야기를 같이 들어보자.


Q. 작가님, IXDesign 독자 분들께 인사 한 마디 부탁 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저는 조윤진이 되고 싶은 조윤진이자, 박스테이프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 조윤진입니다.

 

 

 

Q. 작가님의 작업 방식을 소개 부탁드립니다. 어떤 과정을 거쳐 작품이 탄생되나요?


A. 일반적인 작업 과정이랑 다를 것이라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는데요! 사실 재료만 다를 뿐, 똑같습니다. 그릴 것을 선정하고, 스케치를 하고, 그 위에 테이프를 붙입니다! 너무 쉽죠?


Q. 소재 선정에 대해 얘기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작가님의 작품을 보면 배우나 아티스트 등, 인물을 모티프로 작업을 많이 하신 것 같아요.


 A. 글쎄요. 내가 왜 이렇게 인물에 집착할까요? 거슬러 올라가 보면 어렸을 적부터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있던 것 같아요. 세상에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참 많을텐데 저는 그렇게 인물을 보면 그리고 싶어지더라구요. 사람마다 그려보고 싶고, 표현하고 싶은 것이 다 다르잖아요. 저는 그게 인물이었던 거죠. (자연에도 아름다운 풍경이 있지만) 인물 속에도 그 안의 풍경이 있다고 생각해요.

 


Q. 그렇게 한 작품을 완성하시기까지 영향을 끼치는 것들이 있을까요?


A. 엘리자베스 페이튼, 데이비드 호크니, 알렉스 카츠 등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어요. 엘리자베스 페이튼은 ‘나는 그저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릴 뿐’이라고 말했고, 데이비드 호크니는 ‘우리는 100개의 선을 사용해 튤립을 그릴 때보다 5개의 선을 사용해 튤립을 그릴 때 더 창의적일 수 있다.’고 했죠. 제가 정말 힘든 시기에 저 말들이 제게 굉장히 큰 힘이 되어 그림을 다시 그릴 수 있게 해줬거든요. <포레스트 검프>나 <와이키키 브라더스> 같은 영화, 황보령의 음악도 제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Q. 지금까지의 작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가장 어려운 작업은 무엇이었나요?


 A. 사실 이런 질문이 제게는 가장 어려운 질문이기도 한데요. 그래도 꼽자면  가장 최근 작업했던 김영하 작가님의 소설 <작별 인사> 표지 작업이 가장 어려웠던 것 같아요. 표지 의뢰를 받았을 때 좋아하는 작가님의 작업이라 좋았던 것도 있지만, 동시에 심적 부담이 너무 컸어요. 감히 내가 이걸 맡아도 되는 걸까. 처음에는 못하겠다고 솔직히 말씀을 드렸어요. 그런데 오히려 그래서 더 제가 맡아줬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구요. 제 작업을 잘 보시면 아시겠지만, 상상을 해서 그린다기보다는 있는 인물들을 제가 느끼는 색으로붙여갑니다. 소설을 읽고 책의 얼굴인 표지를 그린다는 것은 전혀 다른 영역이죠. 결과적으로는 잘 나온 것 같아 뿌듯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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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IXDesign의 독자 분들 중 아티스트가 되길 꿈꾸는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으시다면 한 마디만 부탁드립니다.


A. 반복에 지치지 않는 사람이 성공한다. 새로움 혹은 혁신은 언제 어디서 갑자기 나오는 것이 아니라 꾸준한 반복에서 나오는 것이죠. 소박이 모여 중박이, 중박이 모여 대박이 되는 거죠. 예술활동은 나와의 약속이고, 나의 일입니다. 항상 스스로를 의심하는 일, 외롭고 고독하게 만들지만, 살아 있는 한 계속 해나가야 하는 일이에요. 모두가 동시에 화려하게 피어날 수는 없는 법이니까요. 그저 내가 나를 믿고 나아가는 게 최선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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